본 번역물은 동방창상화의 aho 작가의 작품을 작가의 허락을 받아서 번역하고 있습니다. 글의 저작권은 aho 님에게 있으며 상업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줄 간격은 원작의 줄 간격에 맞춰 띄우고 있으므로 조금 이상하게 보이더라도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청전Lumius-

원작 URL - http://coolier-new.sytes.net:8080/sosowa/ssw_l/59/1221409268

원작 투고 시기 - 2008년 9월 15일


 

 

"수고했어 할망구!"

 

이건 간만의 난제구나, 하고 야쿠모 유카리는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짓고 있는 어린이에게 할망구 소리를 들었을 때 사람은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 음, 조금 생각해 볼까.

 

순간적인 감정에 몸을 맡겨 아이를 날려버리는, 그런 솔직한 마음의 대응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건 너무 생각이 짧다. 대요괴의 몸으로서 무수한 선택지를 갖가지 각도에서 검증해 보아야만 한다.

 

'......일단은 상황을 정리해 보자.'

 

평소와는 달리 오늘은 왠지 한낮에 눈을 떴다.

흐트러진 머리를 긁적이며 '아~암, 졸려~' 라며 방의 미닫이문을 연 순간에 눈앞이 꽃으로 가득 찼다.

이게 뭐야, 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그 꽃들은 어께 옆을 지나가더니 두 명의 소녀의 웃는 얼굴이 나타났다.

한 명은 유카리의 식신인 란의 식신, 첸이고 다른 한 명은 얼음의 요정인 치르노.

둘은 자주 같이 놀기에 이 둘이 같이 있는 것 자체는 딱히 별난 일도 아니다.

아무래도 둘은 미닫이문 바깥의 툇마루에 서서 유카리가 나오는 걸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째서 둘이 양 손에 꽃다발 같은 걸 갖고 있는 걸까, 하고 속으로 고개를 갸웃했을 때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은 그 애들이 양쪽에서 꽃다발을 내밀며 아까와 같은 말을 한 것이다.


'이 상황, 정말 의미를 모르겠는걸. 하지만 괜찮아. 난 환상향이 자랑하는 이과 미소녀인걸. 그래, 이과계열 미소녀야. 이과계, 미소녀. 다음에 할 행동을 결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인걸.'


유카리는 조용하고 빠르게 계산을 시작했다. 지금 인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존재하는 갖가지 정보를 무한하다고도 할 수 있는 방대한 수의 수식으로 엮어내어 온갖 값을 산출해 최고의 해답을 도출해낸다.


'.......일단은 틈새로 끌고 들어가서 한 시간 정도만 설교하도록 할까.'


조금 진부하고 흔한 결론을 내버렸지만 이걸로 됐다.

선택지는 거의 무한에 가까웠다. 이 결론에 다다를 때 까지 유카리의 머릿속에 있는 치르노는 1만 번 정도 증발했고 10만 번 정도 갈가리 찢어지고 100만 번 정도 자이언트 스윙으로 던져져 날아갔다.

그 정도의 분노를 샀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평화적인 해결책을 선택해낸 자신에을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얍! 역시 환상향 최고의 대요괴! 이과계 미소녀는 겉멋으로 하는 게 아니란 말씀!

덧붙여서 첸에 대해선 처음부터 설교만 할 생각이었다. 강한 벌을 내리려 하자 머릿속의 란이 매달리면서 울부짖어 상당히 우울해지는 것이었다.


'그럼, 이제 신속하게 설교용 틈새방으로.......'


그렇게 평소 하던 대로 통로의 틈을 열려고 하자 유카리는 문득 눈치챘다.

지금, 얼굴 가득히 웃음짓고 꽃다발을 내미는 치르노와 첸의 뒤에 달리 몇 명인가의 사람과 요괴가 서 있었다. 언제나 치르노나 첸과 같이 노는 친구들인 리글, 미스티아, 루미아, 대요정이었다. 더욱이 그녀들을 지켜보는 모습이 있어서 보니 ​유카리의 식신인 란도 끼어 있었다.

치르노와 첸과 달리 다른 소녀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아니, 웃고 있다고 한다면 웃고는 있었다. 파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움찔거리고 있을 뿐. 루미아만 상황을 잘 모르겠다는 듯 천진난만하게 있었지만.

 

'....... 다른 애들은 아까 한 말이 엄청나게 실례되고 당상 살해당해도 될 정도의 말이라는 걸 굳이 입 밖으로 낼 필요도 없이 제대로 알고 있는 모양이네.'

 

그렇다면 왜 치르노랑 첸을 막지 않은걸까? 유카리의 마음속엔 의문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어디의 누가 어디서부터 보더라도 완벽한 미소녀인 자신에게 조금 짓궂고 머리는 좀 안좋지만 기본적으론 솔직해서 좋은 애들인 치르노와 첸이 '수고했어 할망구!' 같은 말을 했다. 뭔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애초에 어떤 이유에서든 이 영원한 미소녀를 할망구라고 부른 건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하지만 벌을 주는 건 잠시 보류하도록 하자. 일단은 진상 규명을 해야지.

 

'그렇다곤 해도 나정도 되는 사람이 성급하게 결론을 내버리다니.'

 

유카리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환상향이 성립된 것에 관계해서 대요괴라는 이름으로 모두에게 두려움받고 기분 나쁘다고 듣고 덤으로 수상하다고까지 여겨지길 벌써 수 백년. 얼굴에 대고 할망구라 불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때문인지 조금 지나치게 화를 내 버린 건 아닌가 싶다.


'이러면 안되지. 언제 어디서나 여유를 잔뜩 갖고, 인간미 넘치는 언동은 시(詩)적으로 멋지게 보일 수 있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의 무례 정도는 요염하고 섹시하게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것이, 환상향이 자랑하는 이과계 아가씨같은 미소녀, 야쿠모 유카리의 장점인걸. 이런 어린 요괴와 바보 요정을 상대로 일일이 잡아찢어서는 카리스마를 지키기 힘든걸, 응.'


어쨌든 일단은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유카리는 눈앞의 치르노와 첸을 향해 생긋 하고 미소를 지었다.

덧붙여서 '수고했어 할망구!'라고 듣고 나서 여기까지 오는 데에 1초 정도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틈새 요괴의 생각은 인간이나 다른 요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역시 영원한 이과계 미소녀, 머리도 몸도 늙는 것과는 관계 없어! 라며 유카리는 마음 속 자신에게 칭찬했다.


"두 사람에게 미안하지만 잘 듣지 못했단다. 다시 한 번 말해줄 수 있을까?"


상냥한 미소를 짓고 조금 허리를 숙이며 유카리는 귀엽게 고개를 '갸웃했다. 어딜 보든 완벽하다. 역시 영원의 미소녀. 할망구라고 불릴 부분 같은 건 어디에도 없어! 라며 스스로를 격려하는 유카리의 앞에서 치르노와 첸은 함박웃음을 지은 체로 대답했다.


"수고했어 할망구!"


.......일단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것과 자신이 '할망구' 라는 말에 대해 생각한 것 보다 더욱 화를 내게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유카리의 상상 속에서 치르노가 1000만 번 정도 전철에 치어 죽었다. 그 옆에서는 첸의 무참한 시체를 끌어안은 란이 슬픔의 표효를 외치며 금색의 아우라를 불태우고 있었다.

나 화났어 할망구-! 브루투스 너마저.


'아니아니, 공상 속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지.


유카리는 끓어넘칠 것 같은 분노를 억지로 가라앉히며 겉으로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질문했다.


"두 사람 다 미안해. 너희들이 말한 것에 대한 의미를 잘 모르겠는걸."

"에~엣. 유카리님에게도 모르는 게 있나요!"


첸이 놀라서 외쳤다. 그녀의 말로는 즉 야쿠모 유카리는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통하며 그 자체로도 대견하긴 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속죄가 되지 않는다.


"어머, 첸. 잘 알고 있구나. 물론 나에겐 모르는 건 없단다. 그렇지, 조금 말을 바꾸어 볼까. 방금 한 말은 어떤 의도로 한 말인지 너희들의 입으로 직접 이 나에게 설명해 주길 바라는 거란다."


유카리는 생긋 미소지었다. 그것만으로도 대요정은 눈에 눈물이 맺히고 리글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으며 미스티아가 유서와도 같은 노래를 작은 목소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여전히 상황을 모르는 루미아 이외에는 유카리로부터 풍기는 압박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란도 란 나름 어떻게든 주인을 달래보려 했지만 나설 타이밍을 잡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친구들의 모습은 모른 채 치르노가 힘차게 말하기 시작했다.


"유카리는 훌륭하니까 감사를 하러 온 거야!"


또 영문을 모를 이야기다.


'내가 훌륭하다고 하는 건 모를 일도 아니지만 감사를 하러 왔다니....... 응? 뭐야. 그럼 '수고했어 할망구!' 는 감사를 표하는 말이었단 말야?


그걸 감사의 말로서 받아들인다니 무슨 마조히스트도 아니고, 라는 생각을 하는 유카리였다. 나는 어딘가의 천인이 아니란 말야.

애초에 치르노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다고 유카리는 새삼스럽게 느꼈다. 한숨을 쉬며 다른 사람들에게 눈을 돌렸다.


"....... 당신, 이 상황, 정리해서 알기 쉽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예, 옙!"


지명된 대요정이 어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다가왔다. 온화하고 청초한 이미지가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엉망이 됐다.


'그렇게까지 무서워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말이지.'


유카리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치르노가 '다이쨩 왜 무서워하는거야' 라며 이상하게 여길 정도의 표정도 웃음을 자아낸다.


"저기, 그, 유카리님은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아시나요."


대요정이 긴장해서 고조된 목소리로 물어왔다. 유카리는 극히 평범하게 대답했다.


"경로의 날이구나."


그것 자체는 조금 전부터 깨닫고 있었다. 아마도 아까부터 치르노와 아이들의 말에 무슨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는 것을.


"그, 그래요. 경로의 날이에요. 저희들은 전에 인간 마을의 케이네 선생님께 그걸 배운 적이 있었어요. 그, 지금 저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만드신 나이 많으신 분들께 경애와 감사를 드리는 날이라고 들었어요."

"호오. 즉 너희들은 이 나, 야쿠모 유카리를 틈새요괴 할망구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구나."


관자놀이 부근을 조금 잡아당겼다. '힉' 하고 짧은 비명을 내며 대요정이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게 됐다. 아니, 말문이 막힌 건 둘째치고 대요괴의 노기를 가까이서 뒤집어 쓰고도 오줌이 새어나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그래 맞아"


경직돼 버린 대요정 대신에 다시 치르노가 힘차게 말했다.


"유카리는 예전부터 환상향을 위해 힘내 준 훌륭한 할머니니까 제대로 존경을 표하라고 들었어."


이걸로 결정. 역시 이 바보 요정은 자신을 노파로 인식하고 있다. 이 무슨 무례함과 모욕인가.


'하지만'


유카리는 눈앞의 요정을, 한 치의 악의도 없는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 거기엔 악의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이쪽을 똑바로 올려다보는 푸른 눈동자는 존경과 경의로 차 있는 듯이 보였다.

흘끗 첸에게 눈을 돌리자 이쪽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경우 유카리는 주인의 주인에 걸맞는 위대한 요괴인 만큼 눈에 존경의 표시가 드러나는 건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 감정이 한층 더 깊어진 듯이 보였다.


'왠지 화내기 껄끄러워져버렸는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수상한 냄새가 난다든가 거북하다고 꺼려지는 현재, 유카리는 이런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호의의 표현과는 인연이 멀었다. 그 때문에 드믈게도 생각이 이리저리 휘말려 몇 초인가 다음에 무엇을 말해야 할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사이에 치르노가 들뜬 목소리로 설명을 계속한다.


"그래서 말야, 유카리의 무용담을 잔뜩 들어서 이 몸이 '유카리 멋져~!'라고 하니까 '그렇다면 감사의 말과 함께 이것을 가지고 있으렴' 이라고 해서 이 꽃 받은거야. 수고했어 할망구 라는 말도 그 때 배운 거야."


점점 사건의 진상이 보이기 시작하는 느낌을 받으며 유카리는 첸에게 물었다.


"그, '수고했어 할망구'라는 말은 어떤 뜻이라고 배우고 온 거니?"

"으~음, '환상향에는 존재하지 않는 바깥 세계의 말로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이야. 열심히 한 사람에게 최고의 칭찬이 되니까 꼭 말해주렴. 유카리는 바깥 세계의 지식도 깊으니 무조건 기뻐해 줄거야' 라고."


설명한 뒤에 첸은 불안하게 유카리를 올려다 보았다.


"저기, 혹시 뭔가 잘못된 건가요?"


당연하잖아의심좀해라이바보고양아.

그렇게 몰아치고 싶어지는 걸 유카리는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일단 이 애들에게 악의가 없는 건 알았다. 그러니 대신에 란을 노려보았다.


'이 고양이, 사람을 의심한다는 걸 너무 모르는데. 당신 대체 어떻게 교육한 거야?'

'솔직해서 귀엽지 않으십니까. 첸 귀엽다구요 첸.'

'사고가 치르노랑 같은 레벨이라는 거에 대해서 의견을 내 봐.'


눈이 마주친 한 순간의 끝에 란은 말없이 눈을 돌린다. 이 바보 여우 나중에 체벌 결정이야, 라며 유카리는 작게 이를 갈았다.

그 때 시야에 세 개의 그림자가 날아왔다.


"죄송합니다!"

"악의는 없었어!"

"부디 용서해 주세요!"


무릎을 꿇기라도 할 것 같은 기세로 머리를 숙인 건 대요정과 미스티아, 그리고 리글이었다.

용서받지 못했다간 치르노와 첸이 먼지 한 톨 남김없이 소멸해버릴 거라고라도 생각하는지 필사적이다.

그걸 본 치르노와 첸이 멍하게 입을 벌리고 뒤에서는 루미아가 뚜벅 뚜벅 걸어왔다.


"다들 왜 사과하고 있는거야?"

"됐으니까 루미아도 고개 숙여!"

"왜 그래~"

"나중에 장어 먹여줄테니까."

"그런가아~"

 

숙인 머리가 넷이 됐다. 유카리는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자기들과는 관계 없는 일이니 그냥 두면 될 텐데 친구들에 대한 마음이 상당하구나.'


흐믓하게 생각하면서, 어디, 이건 점점 화내기 힘들어지네, 라고 유카리는 작게 한숨을 쉰다. 이제 상황은 완전히 파악했으니 애초에 이 애들에게 화를 낼 이유는 없어졌지만.


"저기 말야 유카리"


치르노가 불안하게 유카리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이 몸들 뭔가 나쁜 말 했어?"

"죄송합니다 유카리님."


울 것 같은 치르노와 축 처진 귀를 늘어뜨리고 면목 없는 듯이 있는 첸을 보고 있으니 왠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유카리는 살짝 미소지으며 쭈그려 앉아 둘을 끌어안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상한 것 같은 건 말하지 않았단다."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나답지 않은 걸 하고 있네' 라며 유카리는 마음 속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건 대요괴에게도 망설임을 가져다 주는 듯 싶다.


'응, 그런대로 평소처럼의 분위기로 넘겨버리면 되는 거겠지.'


유카리는 둘에게서 꽃다발을 받고 틈새 사이로 란에게 넘겨보냈다.


"거실에라도 꾸며둬 주렴."

"알겠습니다."


란이 평온하게 미소지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치르노와 첸의 표정이 확 하고 밝아지고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을 보며 안심한 표정으로 숨을 내쉰다.


"그건 그렇고."


하지만, 유카리에게 있어 진짜는 이제부터다.


"내 무용담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들은 거니?"

"그게 말야, 유카리가 아주 오래 전에 환상향을 만들었다던가 갈 곳 없는 요괴들을 바깥 세상으로부터 불러들였다던가 지금도 그 결계가 부서지지 않도록 힘써주고 있다던가 이 몸들이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해준다던가."


치르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이 몸 최강이라고 생각했지만 유카리도 최강이니까 역시 최강끼리 경의를 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어."

"어머, 그러니. 그건 영광이구나."

"저도 유카리님의 위업을 자세히 들은 건 처음이어서 엄청 감동했었어요! 그래서 분수도 모르는 몸이지만 뭔가 해드리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첸도 고개를 들어올리며 엄청난 열의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녀석들, 하고 생각하면서 유카리는 머리를 굴렸다.

즉, 누가 치르노와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걸 집어넣었는가에 대해서였다.


'환상향을 내가 만들었다, 란 건 다소 잘못되긴 했지만 그런 옛날 일을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다는 건 환상향에서도 꽤 높은 위치의 요괴란 거네. 그래서 치르노와 첸에게 '수고했어 할망구!' 라고 말하게 해서 나에게 정신적 타격을 입히려고 계획했다는 거지. 거기에 그에 대한 보복도 무서워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유도하고 있어. 호전적이고 전투력에 자신 있는 녀석.'


대요정과 아이들이 여기에 올 때 까지 치르노와 첸을 막지 않았다. 아니 막지 못한 건 아마 그 요괴에게 협박당해서겠지.


'그렇게나 정성들어 괴롭히는 짓을 하는 녀석. 그리고 빈틈이 없어.'


유카리는 슬쩍 란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이 식신에게 아까 넘겨줬던 다채로운 꽃의 다발.

서향꽃, 스태티스, 제라늄, 글로리오사, 석남화, 나팔나리, 국화, 카틀레야, 모란채 등등.

자세히 보니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각 계절별 꽃이 한 곳에 섞여 있어 통일감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그 꽃들 한 가운데에 꽃잎을 펼친 크디큰 해바라기.


'응, 이거면 문제없겠네.'


딱히 문제라 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유카리는 공간에 틈새를 열어 아무렇게나 팔을 쑤셔넣어 저편에 있는 사람의 목덜미를 잡아 이쪽으로 끌어당겼다. 저항은 없었다. 매우 사뿐하게 유카리의 방에 내려선 그 사람은 양산 밑에서 우아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어머, 평안하신지요 할머니."


역시 네녀석이냐 카자미 유카.


'.......아니, 생각할 것도 없이 그 이외엔 말이 되지를 않지만.'


이 진성 S가, 라고 속으로 분노의 포효를 외치며 유카리는 겉으론 얌전하게 미소지었다.


"평온하답니다. 당신에게 받은 선물은 감사히 받았답니다."

"헤에. 그럼 잘 된 거구나. 다행이다~."


유카가 입에 손을 대고 키득키득 웃었다. 하지만 가늘게 뜬 눈동자에는 이쪽에 대한 적의밖에 없다. 물론 유카리는 주눅들이지 않고 받아냈다.


'한 번 해 보시겠다 이거지 꽃의 요괴 주제에.'

'어머, 난 아무것도 잘못한 건 없는걸.'

'그럼 '수고했어 할망구!'는 뭔데.'

'틀리진 않았잖아, 할머니?'

'틀려먹은 게 맞잖아.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에게 거짓을 알려주다니.'

'음, 확실히 그게 칭찬이라는 말은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중요한 걸 잊어린 거 아냐?'

'뭔데?'

'만약 그게 거짓이라 할지라도 당신이 환상향의 요괴 중에선 노인이라는 위치에 있고 경로의 날에 존경받는 존재라는 걸 이 애들이 인정했다는 것.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걸?'

'큭.......'


부딪히는 시선에 교차돼서 날아오는 열받는 말에 유카리가 작게 신음하자 유카는 상쾌하고 기쁘다는 듯 웃었다.


"그런 고로 항상 수고 많으십니다 할망구! 유카리 할멈?"

'이자식........!'


겉으로는 웃는 얼굴을 계속 지은 채 유카리는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 정도의 분노를 느낀 건 전에 있었던 하쿠레이 신사의 국지적인 대지진 소동 이래로 처음이었다.

원래라면 바로 유카와 유쾌하고 불유쾌한 유혈 낭자한 환상향 연무를 펼쳤었겠지만 여기서 싸웠다간 틀림없이 주변에 있는 어린 요괴들이 말려들겠지. 그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진정하자 유카리.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환상향이 자랑하는 영원불멸의 이과계 아가씨같은 미소녀. 냉정하고 침착하게 애들을 보낸 뒤에 이 썩은 꽃을 틈새 저편의 마공공간에 처박아버리면 되니까.'


그렇게 유카리와 유카가 웃는 시선을 부딪히고 있을 때 갑자기 둘 사이에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유~카. 유~카."

"어머, 치르노. 어때, 대성공이었지?"

"응. 유카리 엄청 기뻐해줬어! 고마어 유~카."

"응응, 그치, 그치, 역시 경로의 날엔 나이든 분께 존경을 표해야지."


치르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유카가 씨익 웃음을 보내 왔다. 아무래도 아직 유카리를 놀릴 생각이 가득한 것 같다.


"글서 말야, 유~카."


하고 갑자기 치르노가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왜 그러니."

"이 몸, 유~카에게도 줄 게 있어."

"응? 나에게?"


유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예상외의 사태인 것 같다. 곤혹스러워하는 그녀 앞에 치르노는 천천히 양 손을 펼치며 내밀었다. 그녀의 손 가운데를 보니 멋진 얼음 꽃이 피어 있었다. 놀라는 유카를 향해 얼음의 요정은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고했어 할망구!"


공기가 얼어붙었다. 퍼펙트 프리즈였다. 역시, 냉기를 조종하는 정도의 능력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런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 유카는 한동안 말없이 어안이 벙벙하게 있다가 이윽고 천천히 물어보았다.


"이건 무슨 뜻이려나, 치르노."

"그거, 이 몸이 힘써 만든거야. 에헤헷. 이쁘지? 이 몸의 힘을 넣어서 특별한 얼음으로 만들었으니까 아마 태양 아래서도 1주일 정도는 괜찮을거야."

"그게 아니라! 에, 뭐야. 왜 나에게 '수고했어 할망구!'라고 한거야?"

"응? 그치만 유~카 할머니잖아."


치르노는 아무 주저나 죄악감 없이 딱 잘라 말했다. 그 한 순간에 유카의 왼손 주먹이 13번이나 치르노를 향해 날아갔지만 전부 틈새 사이로 손을 뻗은 유카리에 의해 막혔다.


'큭, 방해하지 마 할망구!'

'어머, 이 애가 말하는 걸 보니 당신도 할망구인걸? 이야기 정도는 들어주는 게 어때?'


생각도 못했던 역전의 실마리를, 당연히 유카리는 놓치지 않았다.

아까의 울분을 풀기 위해 불쾌함이 느껴지는 비웃음을 유카를 향해 날렸다.

꽃의 요괴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냉정하게 치르노에게 질문했다.


"그래. 치르노에게 나는 할머니구나. 어째서니?"

"저기, 전에 다이쨩이."


치르노가 거기까지 말한 순간 뒤에서 일이 돌아가는 걸 지켜보던 대요정을 향해 무수한 꽃의 탄이 날아왔지만 그것도 유카리가 막아냈다.

이런 초고속 공방을 펼치는 둘을 보지 못한 채 얼음의 요정은 천연덕스럽게 계속한다.


"환상향연기라는 걸 제대로 읽어 봤는데 말야."

"아, 그 뭔가의 인간이 쓴 책?"

"응. 글서 그 안에서 유~카에 대해 적힌 게 있었어."

"뭐라고 적혔는데?"

"그게말야."


치르노가 열의있게 이야기한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가로되, 긴 세월을 살아온 요괴는 점점 활동이 활발하지 않게 된다.

가로되, 카자미 유카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확인돼 온 요괴다.

가로되, 카자미 유카는 최근 그다지 꽃밭에서 움직이지 않는 듯 하다.


"그리고 움직이는 것도 느긋하게 하고."


그렇게 끝맺은 치르노는 생긋 하고 웃었다.


"그러니까 유~카는 할머니!"


그 한 순간에 유카가 펼친 공격은 주먹, 걷어차기, 양산으로 찌르기와 참격, 던지기와 박치기 등 실로 할 수 있는 모든 공격을 했다. 유카리는 그 모든 걸 틈새 너머로 넘겨 막아내고 완벽하게 치르노를 지켜냈다.


'후훗, 환상향이 자랑하는 영구불멸에 의한 유일무이의 이과계 아가씨같은 미소녀를 얕보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아무리 당신이 매섭게 몰아쳐도 분노가 실린 공격을 계산해 내는 건 엄청 쉬워.'

'큭, 틈새요괴 할망구가.......!'

'지껄여 보렴, 썩은꽃 요괴 할망구'


유카는 작게 혀를 차며 어딘지 모르게 필사적인 느낌을 주는 웃음을 지으며 치르노의 어께를 잡았다.


"치르노, 자~알 생각해 보렴. 정말로 내가 할머니니? 오히려 자연스럽게 젊은 쪽이라고 생각한다만."

"에엣, 그치만 몰골도 할머니 같은 걸."

"모, 몰골.......!?"

"응. 스커트가 질질 끌리는 점이라던가 양산을 양손으로 잡고 느긋이 걸어가며 인사한다던가. 왠지 인간 마을에 있는 인간의 할머니랑 닮았는걸."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유카에게 완벽한 결정타를 날린 뒤 치르노는 다시 웃으며 얼음꽃을 넘겨주었다.

 

"그러니까 수고했어 할망구! 유~카도 꽃밭 지키니까 훌륭해! 그리고 환상향연기에도 최강 클래스라고 적혀 있었고. 이몸도 최강이니까 경의를 표할게."

".......그래. 고맙구나."

 

마침내 포기한 건지 유카는 쓴웃음을 지으며 얼음 꽃을 받아들였다. 그대로 박살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행동을 할 기색은 보이지 않고 천천히 란에게 다가갔다.

 

"미안하지만 잠깐 이것 좀 맡아주지 않을래? 할 일이 생겨버려서 말야. 나중에 받으러 올게."

"네에."

 

란이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그래도 정중하게 받아들인다. 그러고 나서 유카는 다시 유카리의 앞으로 돌아왔다.

둘은 한동안 무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동시에 쓴웃음을 지었다.

 

"잘 됐잖아. 평소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제에 존경을 받다니. 연중 꽃에 둘러싸여 묵직하게 어정어정 돌아다니고, 그러면서 어린이들이 주변에 있어준다니. 야~ 나이들었다는 거 참 대단한 이득인걸~, 유카 할머니?" 

"그러네. 매일 느긋하게, 정말 복 받았다니깐. 어딘가의 누구씨는 아직 늙은 몸을 채찍질하면서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말이지~. 이런 걸 뭐라고 말했더라. 늙은이가 주책 부린다고 했던가? 아니, 죽으려 안달이라던가? 저기, 뭐였더라, 유카리 할머니?"

 

파직, 하는 소리가 나며 대기가 울리고 저택 전체가 덜컹덜컹거리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요정과 리글은 비명을 지르며 끌어안고 첸이 털을 거꾸로 세우고 미스티아는 다시 유서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때, 아직 이상함을 깨닫지 못하고 멍하게 있는 치르노와 루미아를 가로질러 한 명의 식신이 결사의 각오로 두 명의 대요괴 사이에 끼어들었다.

 

"두, 두분 다 부디 진정하세요."

"닥치고 있어."

"어디론가 가 있어."

 

두 사람에게서 동시에 말을 듣고 란은 반쯤 울며 몸을 뺐다. 하지만 마침내 첫 공격이 시작되려나 싶은 때에 갑자기 생각난 듯 외쳤다.

 

"아아, 마, 맞다! 얘들아, 거실 쪽으로 가서 간식을 가져올 건데, 먹고싶지 않니?"

"정말!?"

"먹을래~앳!"

 

제일 먼저 반응해서 앞다투어 방으로 뛰쳐 들어간 건 말할 것도 없이 치르노와 루미아였다. 한 템포 늦게 다른 사람들도 뒤를 이었다.

 

"와~아, 만세~"

"잘 먹겠습니다앗~"

"란 님의 간식은 끝내준다구~"

"기대되는걸~"

 

엄청나게 단조로운 국어책 읽기로 외치며 어린 요괴들이 마치 달아나는 토끼처럼 방에서 탈출했다. 그렇게 세 명만이 남은 뒤 란은 주뼛주뼛한 말투로 제안했다.

 

"저, 그, 두 분은 어떠신지요."

"필요 없단다."

"나중에 먹을 테니까, 내 몫은 남겨두도록 하렴, 란."

"어머, 나이에 맞지 않게 탐욕스럽구나 할망구."

"그쪽이야말로 나이가 들어서 먹는 양이 줄어든 거 아니니 할망구."

 

이미 싸움은 피할 수 없이 보여서 란은 한숨을 쉬며 어께를 늘어뜨린다. 그 때 탁탁탁 하고 발소리를 내며 치르노가 미닫이문 저편에서 얼굴을 내민다.

 

"저기, 왜 그래, 란? 다들 기다리고 있다구?"

"아, 으응, 미안하구나. 지금 갈게. 음.... 그건 그렇고 치르노?"

"왜 불러?"

"나, 나도 상당히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하는데 유카리님이랑 유카님처럼 존경받지 않으려나~ 싶어서."

"에~엣, 란은 아직 언니같은 느낌이잖아. 수고했어 할망구! 라는 말을 듣기엔 아직 너무 이르지 않아?"

"그, 그런 건가...."

"아하핫, 뭐야 그거. 루미아 흉내?"

"란, 나중에 두고 보자."

"그, 그런!"

"그리고, 치르노."

"왜?"

 

유카리는 유카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어께 너머로 치르노를 돌아보며 쓴웃음지었다.

 

"고마워. 아주 기뻤단다."

 

치르노가 멍하게 있다가 다시 태평하게 웃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감사는 이 몸이 하는 거라구!"

 

기세 좋게 머리를 숙였다.

 

"유카리, 항상 고마워! 앞으로도 힘내 줘!"

 

머리를 올린 치르노의 얼굴엔 매우 행복한 웃음이 넘치고 있었다.

그걸 지켜고 고개를 조금 숙였다가 작게 숨을 들이쉬고 유카리도 다시 웃었다.

 

"응. 물론이야. 힘낼게. 아직 힘낼 수 있어."

 

그렇게 치르노에게 끌려가듯이 란이 나가고 방에는 대요괴 두 명만이 남았다.

서로를 조용히 노려보다가 유카리가 제안했다.

 

"장소, 옮기지 않겠어?"

"그거 좋은데."

"어머, 솔직한걸."

"어린 애들을 휘말리게 해서 엉엉 울게 만들면 흥이 깨져버리니까.:

"동감인걸."

 

큭큭 웃으며 공간에 커다란 틈새를 연 유카리는 슥 하고 표정을 지웠다.

 

"틈새 저편의 마공공간으로 가자고......"

"간만에, 폭발했어......."

 

격투는 밤까지 계속됐다.

 

 

 

 

 

 

".....그래서 너덜너덜해져서 돌아오셨다, 란 겁니까."

"무승부였어 무승부. 크로스 카운터 때문에."

"주먹다짐을 하셨던 겁니까."

"그 녀석, 야만스러운데다가 끈질기단 말야."

"능력은 쓰지 않으셨던 겁니까?"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

"즐기고 계셨던 겁니까."

"2할 정도는 말이지."

 

즉 8할은 진심이었단 말인가, 라며 란은 몰래 한숨을 쉬었다.

달이 밝은 밤이었다. 어린 요괴들은 벌벌 떨면서도 간식은 제대로 챙겨 먹고 돌아갔고 첸도 자신의 주인의 거처로 돌아갔으므로 지금 이 방에는 유카리와 란 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란은 유카리의 방 툇마루에서 너덜너덜해져 돌아온 주인의 팔에 붕대를 감아주는 중이었다. 언제나 새하얗고 가녀린 두 팔에 생긴 무수한 베인 상처는 가까이서 보니 엄청나게 아파 보였다.

 

"그건 그렇고."

"뭐니."

"왜 저는 이런 걸 하고 있는 걸까요."

"어머, 나쁜 식신이네. 상처입은 주인을 그대로 방치해 둘 셈이니?"

"아니, 그게 아니라 유카리님이라면 이런 걸 하시지 않아도 옷 째로 재생시켜버릴 수도 있지 않나요."

"응, 그 말대로지만 말이지."

 

유카리는 후훗 하고 즐거운 듯이 웃었다.

 

"가끔은 이렇게 몸을 아끼지 않는 충실함에 신세를 지는 것도 나쁘지 않아."

"가끔은?"

"응?"

"아, 별 말 아닙니다."

 

언제나 느릿느릿한 주인의 모습을 생각해 내자 왠지 석연치 않은 란이었다.

그런 식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카리는 '아' 하고 목소리를 내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건 그렇고, 할머니, 인가."

"아직도 신경쓰고 계셨던 겁니까."

"그거야 그렇지. 누가 뭐라 해도 환상향에서도 비교할 사람 없는 영원불멸이자 유일무이한 이과계 아가씨같은 미소녀인 내가, 정말이지 노골적으로 할머니 취급을 받았는걸."

"......."

"왜 입을 다무는거야."

"딱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어."

 

주인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평온해 란은 놀란 나머지 손을 멈추고 말았다.

 

"왜 그러니."

"아, 아닙니다. 그."

 

란은 다시 붕대를 감기 시작했고, 주저하며 대답했다.

 

"........설마, 스스로 인정해 버리시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해서요."

"그치만, 봐."

 

유카리가 이상하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그 애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들은 할머니인걸. 그렇게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계속 이 환상향에 있었어."

"결계가 뻗어나가 여기가 생겼을 때부터니 말이죠."

"그래. 강자, 약자, 인간, 요괴, 모두를 받아들여 주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랑스럽고도 사랑스러운 환상향."

 

부드럽게, 마치 노래하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란. 난 말이지, 이 환상향이 너무 좋아."

"잘 알고 있습니다."

"바깥 세상의 인간의 세력에 밀려 존재조차 부정당해 버린 요괴들도 여기에선 건강하고 태평스럽게 살아갈 수 있어. 그건 나도, 유카도 변하지 않아."

"그렇겠죠."

 

대답하면서, 란은 오늘 유카리가 선물받은 꽃들에 눈길을 주었다. 꽃은 몇 개인가의 꽃병에 나누어서 거실 곳곳에 장식돼 있었다. 유카리의 개인 방의 마루 위에도 한 병이 놓여 있다.

 

"........꽃말, 불멸이니 위엄이니 애정이니, 그런 것만 있었으니 말이에요. 애초에 치르노가 갖고 있었음에도 얼지 않은 걸 보면 특별하게 골라낸 꽃이었겠죠."

"꽃을 조종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 이란 말이지. 뭐, 애초에 그녀가 자신의 상징과 같은 해바라기를 선물해 온 시점에서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매도하고 도발하고 주먹다짐까지 한 걸요."

"그거네, 츤데레라는 녀석."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외래어. 차가운 새침데기(츤)면서 부끄럼쟁이(데레)라는 거야."

"왠지 의미 자체는 알 것 같지만, 그런 말을 쓰시면 위엄이 없어지십니다."

"그건 그렇고 계절감이 전혀 없는 조합이네, 저 꽃들."

"그렇군요."

"후후, 시들지 않는 꽃이라, 마치 나 같은걸."

"........"

"왜 그러니."

"딱히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이지, 너도 그 애들을 좀 보고 배워서 조금은 주인을 존경하는 게 어떠니"

"음, 즉 노인으로서 대우해 달라는 뜻입니까?"

"건방진 말은 하지 마렴."

"죄송합니다."

 

란은 작게 웃었다.

 

"그건 그렇고 유카리님."

"왜 불렀니."

"저는 웃지 않을 겁니다."

 

대화의 흐름상으로 보면 꽤 당돌한 말이었다. 하지만 유카리에겐 제대로 의미가 전달된 듯 하다.

그녀의 등 뒤에 있는 란에겐 주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저 잠시 입을 다문 유카리가 살짝 눈 밑을 닦았으므로, 아, 역시, 하고 생각했다.

 

"기쁘셨던 겁니까."

"그러네. 기뻤었어."

 

유카리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계의 관리와 수복, 환상향의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 갖가지 일을 했지. 딱히 그 모든 게 환상향에 사는 모든 이를 위해서 한 건 아니야. 오히려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나 자신의 안녕과 즐거움을 위해서라는 이유가 클지도 몰라."

"실제로 결계의 수족을 하는 것도 저구요."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렇다 치지 말아 주세요."

"늙은이에게 채찍질이라도 하면서 일 시킬 셈이야?"

"자기 좋을 때만 그러시다니........"

 

란의 우는 소리에 작은 웃음 지으며 유카리는 길고 느리게 숨을 내쉬었다.

 

환상향의 주민들에게 감사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스스로를 위해서 하는 일인걸. 결계를 만들어서 갖은 요괴들을 불러들이고,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이 쪽의 형편에 끌어맞추고........ 그거야 그걸로 도움받은 요괴도 몇인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위해서 한 건 아니었는걸. 나는 다른 요괴를 이용해서 다른 요괴는 나를 이용해서. 그런 타산적이고 매마른 관계라고 생각했었어."

"과거형입니까."

"어느날 말이지."

 

유카리의 목소리에 따스함이 깃들었다.

 

"언젯적 일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쿠레이 대결계의 구축도 하기 전이었을까. 언제나처럼 틈새를 열어서 환상향의 여기저기를 엿보고 있었는데 말이지. 요괴 두 명이 앉아서 멍하게 앉아있는 거야."

"어떤 요괴였던 겁니까."

"글쌔. 기억나지 않아. 둘이 어디에 앉아있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그저 제대로 기억나는 건 두 사람의 몸에는 수많은 상흔이 있었다는 것 정도. '아, 이 녀석들 그다지 강하지는 않은 요괴고 인간에게 쉴 틈 없이 뒤쫓겨서 그대로 여기에 흘러 들어온 애들이구나' 라고 어렴풋이 생각했어. 그런 요괴는 이 환상향에서는 별로 특별한 존재도 아닌데 나는 왠지 그 둘의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았어."

"어째서 인가요?"

"어째서였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쭉, 조용히 앉아있는 두 사람이 묘하게 신경쓰였거든. 뭘 하고 있는 걸까, 싶어서. 이상하게도 바로 내려갈 기분은 들지 않았었어."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가끔 새나 벌래가 우는 소리가 울렸다. 포근한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그런 화창한 풍경 속에서 둘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유카리도 가만히, 그저 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둘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구나.

 

다른 한 쪽이 대답했다.

 

-그러네

 

툭 툭 내뱉듯 말을 주고받는다.

 

-인간, 없구만.

-있겠지. 수가 적을 뿐이고.

-많지 않으면 딱히 무섭지는 않겠어.

-그러네.

-언제 이후로였지.

-뭐가.

-이렇게, 느긋하게 있는 게.

-글쌔. 하지만 꽤 오랜만인 것 같아.

-여기라면 여유롭게 있어도 되겠지.

-그런 것 같아.

-돌도 날아오지 않고 칼에 베일 걱정도 없어.

-술법에 불타거나 식신으로 부추겨질 일도 없고.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거구나.

 

그리고 마지막에 둘의 목소리가 겹쳤다.

 

-와서 다행이야.

 

"그런,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야."

 

유카리가 그렇게 마무리짓고 어딘가 낯간지러운 듯 한 한숨을 자아냈다.

 

"그래도 말야, 왜 그런지 모르겠어. 그걸 보고 나서 왠지 그, 가슴이 벅차올라서 말야. 아, 지금까지 전혀 깨닫지 못했었지만 난 생각보다 큰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야."

 

유카리의 목소리는 매우 즐거운 듯이 들렸다. 란은 잠시 먼 과거를 생각했다. 확실히 옛날의 유카리는 지금과 달랐을지도 모른다. 게으른 건 바뀌지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지루함에 젖은 듯 보였고 그렇다고 해서 뭔가 재밌는 걸 하는 것도 없이 그저 마냥 차가운 인상 밖에 없었던, 그런 느낌이 든다. 지금은 이미 희미해져 버린 기억이지만."

 

"그 때부터 조금씩 환상향을 보는 눈이 바뀌기 시작했어. 눈이랄까, 마음이 바뀐 걸지도 몰라. 무엇을 보더라도 즐겁게 생각되기 시작했어. 요정이 의미 없이 떠들어대는 것도, 요괴가 지루함에 지쳐 싸움을 하는 것도, 인간이 변하지 않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도. 전부 내 안에서 의미를 갖고 환상향의 모든 것이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게 됐어."

 

열띤 목소리로, 그러면서도 조용하게 이야기를 한 뒤 유카리는 다시 크게 숨을 쉬었다.

 

"그래도 근본적으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나는 누군가를 위해서 환상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로 감사받을 것도 없어. 그저 여기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야. 그런데 말야."

 

유카리가 작게 코를 훌쩍였다.

 

"그런, 행복해 보이는 웃는 얼굴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들어버리면 말야."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웃지 않을테니까요."

"고마워."

 

유카리가 한동안 말 없이 눈 한쪽을 누르고 있었으므로, 란도 아무 말 없이 그저 가만히 주인의 어께에 손을 올렸다.

유카리는 이윽고 손을 놓고 '아~' 하며 어딘가 부끄러운 듯 한 목소리를 냈다.

 

"정말, 오늘은 전혀 나답지 못했는걸."

"그러네요. 하지만 가끔은 이런 날이 있어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네. 그럴지도 모르겠는걸."

"저도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고....... 그러고 보니 유카리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누군가에게 하신 건 확실히 드문 일이네요."

"경로의 날이니까.  평소에도 늙은 몸을 이끌고 일하는 너에게 공경을 표한 것 뿐이야."

"저는 아직 '언니' 라는 듯 하지만요."

"요정과 주인의 말, 어느 쪽을 신용할래."

"저의 주인은 모두에게 수상하다는 말을 듣는 분이신걸요."

"무엇보다 그거, 그거야! 왜 환상향 안에서도 견줄 사람 없는 영구불멸에 유일무이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하는 이과계 아가씨같은 미소녀인 내가 할머니고 그 옆에 있는 늙은 여우에 식신까지 딸린 네가 언니인건데?"

"길어요..... 그것보다 비교한다고는 해도 자기 식신을 거기까지 깎아내리시나요, 보통."

"그런 건 아무래도 좋잖아. 그것보다 질문에 대답이나 하렴."

"음, 아마도 그거에요. 저 같은 건 아직 유카리님의 발밑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에 한 표."

"언제부터 그렇게 입을 잘 놀리게 됐을까나."

"좋은 본보기가 가까이에 있어서 말이죠."

"변명만 잔뜩 늘어놓고 말야."

 

유카리는 쓴웃음을 지은 뒤 크게 하품을 했다.

 

"그럼, 이제 슬슬 자도록 할까. 란, 이불 준비 잘 부탁해."

"엣, 공경해 주시는 게 아니셨나요?" 

"어머, 너는 '언니'잖니."

"정말 자기 좋을 대로만 쓰시는군요."

"아무래도 좋으니까 어서 하렴. 너무 졸려서 참을 수가 없단 말야."

"평소라면 일어나 계실 시간입니다만."

"오늘은 나답지 않게 낮부터 일어나 있었고 여러가지로 지치기도 했단 말야. 내일 밤까지 자고 싶어."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오래 자잖아요. 겨울도 아닌데."

 

란이 기막혀 하자 "그치만" 하고 유카리는 짓궂게 미소지었다.

 

"조만간 아직 낮인데도 일어나야 할 때가 있을 거라 생각하거든."

"어째서인가요."

"그 애들은 다시 올 테니까, 야."

 

유카리는 그것이 기대돼서 견딜 수 없다는 듯 한 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백택 교사가, 아니면 아큐가. 어쩌면 오늘 일로 죄책감을 안게 된 대요정에게서 이번 일의 진상을 배워서 말야. 착한 아이들인걸. 분명 울면서 사과하러 올 거야."

 

유카리의 웃음은 수상했다. 란은 작게 한 숨을 쉬며 일단 부탁해 보았다.

 

"너무 심한 벌은 주지 않도록 해 주세요. 악의는 없었으니까요."

"아니야. 여기선 틈새로 끌고 가서 잔뜩 벌을 주어야겠어."

"기쁘지 않았습니까."

"그거랑 이건 이야기가 달라. 환상향 안에서 견줄 사람 없고 영원불멸에 유일무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지고로부터 극에 달한 이과계 아가씨같은 미소녀인 이 나의 작은 새처럼 섬세하고 여린 마음을 상처입힌 그 죄, 단숨에 지옥으로 가야 될 정도로 무겁다구!"

"그러십니까."

"후후후. 이제부터 잔뜩 수면을 취해서 체력을 비축해놓은 뒤에 아침부터 밤까지 틈새에서 설교를 해 주겠어."

 

왠지 모를 두려운 냄새가 나는 수상한 웃음을 짓는 주인을 보며 "아아, 완벽하게 원래의 모습이구나." 라며 란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첸, 강하게 살아가렴.'

 

마음 속에서 자신의 식을 부르며 란은 주인의 잠자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불을 펼치며 슬쩍 보니 유카리는 아직 틈새 너머로 어딘가를 엿보고 있었다. 툇마루에서 내려오는 발이 흔들흔들 하는 뒷모습은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수고했어 할망구! 입니다.'

 

실제로 말했다간 엄청나게 화를 낼 걸 알고 있었기에 란은 마음 속으로만 읊조렸다.

 

'내 주인은 행복하신 분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란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로부터 3일 후, 예상대로 치르노와 첸이 울면서 사과를 하러 왔다.

유카리는 말 없이 그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웃으며 안아주는 것으로 용서해 주었다.

 

 

 

 

 

 

<끝>

 

 

 

 

 

 

 

 

 

 

 

 

 

 

 

 

 

 

 

 

 

 

작가 후기

 

(창상화에서의) 첫 투고입니다. 1000점 정도는 받았으면 좋겠네요.

어딘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경로의 날에 맞춰서 써 보았습니다.

유카리는 왠지 사랑하는 환상향을 지키기 위해서 속으로 고민할 것 같은 이미지.

 

어찌 됐든, 수고했어 할망구!

 

 

 

 

 

 

 

 

역자후기(역자 M_Lumius)

 

번역을 못한 지 어언 1년이 넘었습니다.

군대에 들어온 뒤로 일본어는 거의 접하지도 못했고 그래서인지 한자도 많이 까먹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33.04KB의 용량밖에 되지 않는 작품 하나는 전에 비해서 너무나도 크게 느껴지더군요.

자연스러운 번역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재활치료같은 느낌으로 번역한 글이라 딱딱할 수도 있고 맞춤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캐릭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점이라던가 aho씨 본인의 필력을 그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죄책감까지.......


제가 aho 씨의 작품에 손을 대기 시작한 건 aho 씨는 기본적으로는 저희를 웃음짓게 만들지만 웃는 그 얼굴 그대로 웃음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바꾸어 버리는 그 필력에 반해서입니다.

이야기를 전개하고 연출해내는 능력이랄까.

마냥 웃을 수도 없고 쓴 맛을 느껴 침을 뱉자니 작가가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어 그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결국 쓴 맛과 단 맛을 모두 느끼게 되죠.


질긴 순대가 들어간 순대국을 먹는 느낌일까요.


맛좋은 순대가 들어가 있고 냄새도 맛있고 실제로도 맛있는데 먹기 위해선 질긴 이 겉껍질을 어떻게든 소화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씹으면 씹을 수록 고소한 맛까지 느껴져서 껍질마저 싫지 않게 됩니다. 게다가 씹는 느낌까지 좋아지죠.

이게 aho 씨의 매력이 아닐까 싶네요.



아무튼 aho씨의 허락을 받아낸 이상 끝까지 한 번 해 볼까 합니다.

좋은 건 혼자 읽으면 재미 없잖아요.

같이 즐겨야죠.

물론 정당한 범위 내에서면 더욱 좋겠죠.


aho씨의 부탁으로 작가명(aho)과 출처를 맨 위에 표기했습니다.


영 좋지 못한 번역이었지만 그래도 즐겁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 번역에서 찾아뵙겠습니다.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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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청전Lum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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